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키가하라 전투 (문단 편집) === 얽히는 이해관계 === 덧붙여 동군과 서군은 각 진영마다 얽힌 이해관계가 확연히 차이난다. 일단 동군부터 보자면 다테 마사무네, 구로다 요시타카 등 어부지리를 노리는 영주들도 분명 있었으나 이에야스 밑에서 그를 따르며 미츠나리 파를 축출하는 데 우선목표를 뒀다. 때문에 이들은 각자 자기 부대가 주둔한 곳에서 나름대로 이득을 챙기거나 후일을 도모하는 행보를 보일지언정 동군 자체에 혼란을 가져다 주지는 않았다.[* 사실 구로다 요시타카나 다테 마사무네가 일을 벌이고 싶어도 이에야스가 그럴 틈조차도 주지 않았다. 애시당초 세키가하라 전투 자체가 순식간에 끝나기도 했고.] 반면에 서군은 입장이 다른 영주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이에야스를 따르고자 한 영주들이 많았던 동군과 달리 서군은 둘의 대립을 방관할 생각이었거나, 이에야스를 따를 생각이었던 영주들이 다수 존재했다. 당연하지만 전후자 모두 군사 1만 이상을 보유한 대 다이묘가 [[모리 데루모토|하나씩]]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있었고]] 이들은 모두 서군의 핵심적인 역할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양 진영을 비교해보면 정말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하는데 총지휘관의 참전 유무다. 여기에 얽힌 이해 관계가 폭발하면서 양 군이 극적으로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서군은 모리 데루모토의 참전을 적극적으로 원했다. 전투 전부터 미츠나리는 데루모토가 오사카 성에서 나와주길 원했고 이건 다른 서군 영주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데루모토의 불참이 확정되자 서군 쪽의 사기는 급격히 꺾였고 여기에 데루모토가 없는 모리 군이 미츠나리의 명령을 무시하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구경만 해 서군의 패배를 불렀다. 적어도 데루모토가 이 전투에는 불참할 지언정 서군 병력들 앞에 얼굴만이라도 보여줬더라면 서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을 것이지만 데루모토는 끝내 서군 병력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근본적으로 서로 간에 이해 관계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데루모토는 명목상 총지휘관이었지만 전장에 참전하더라도 미츠나리가 지휘권을 계속 갖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설사 데루모토가 지휘권을 빼앗는다 하더라도 서군은 사분오열될 게 틀림없었고 거기다 서군 내부에는 본래 동군으로 합류하기로 했던 인사들이 많았으며 기회주의자들 또한 많았다. 서로 간에 이해 관계가 얽히게 되면 오합지졸이 되는 것 정도는 숱한 역사가 증명해왔다. 사실상 데루모토가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서군의 시한폭탄들은 모조리 초읽기에 들어갔다 봐도 무방하다. 반면에 동군은 달랐다. 물론 동군도 이에야스가 참전하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을 것이고 동군 다이묘들도 이에야스에게 출진을 재촉했던 적이 있다. 이에야스는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도 했고. 그러나 동군은 서군과 달리 이에야스가 참전은 하되 전면에 나서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히데타다가 3만 5천이나 되는 병사를 이끌고 있는데도 그가 오기도 전에 세키가하라 전투를 치렀음은 물론, 이에야스가 후방에 모리 군이 있다는 이유로 정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동군의 사기에 지장을 주지 않았다. 이는 위에도 설명했던 시즈가타케의 칠본창의 입장 때문이다. 이들의 목표는 미츠나리 파의 축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히데요리를 든든히 지원할 수 있는 대 다이묘로서의 입지를 다질 필요도 있었다. 이에야스가 아무리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이후 검은 속을 드러냈다고는 하나 이미 히데요시와 대립한 바 있는 이에야스를 영주들이 순순히 믿었을 리도 없다. 거기다 엄밀히 말해 칠본창 입장에서 이에야스는 자기들이 이기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자기들이 섬기는 주군이 아니었다. 그들의 주군은 어디까지나 히데요리였으며 이에야스 또한 히데요리의 가신에 불과했다. 즉, 이들 입장에서 이에야스가 정면에 나서 전투를 지배하게 되면 자기들의 공적이 축소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에야스의 개 취급을 받을 여지가 많다. 그러니 이에야스가 총사령관으로서 출진은 하더라도 전투 정면에서 나서 공을 세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 스스로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 그 공적을 인정받아 영지도 왕창 늘려받고 그러면 전투 이후 도쿠가와 정권이 수립되더라도 도요토미 가문과 그들의 입지 또한 유지되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이에야스 입장에서도 이러한 동군 영주들의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었다. 자기 병사들을 갈아넣지 않고 도요토미 가신들만으로 전쟁이 끝난다면 고스란히 남은 군사력으로 정권 수립 후 무슨 일이든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영주들에게 땅도 떼어줘야 하고 당장에 축출했다간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겠지만 영주들이 알아서 선봉장으로 나서주니 이에야스 본인은 일절 피해를 입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되면 이에야스는 영주들에게 논공행상으로 떼줄 만큼 다 떼줘도 본인은 여전히 강대한 세력으로 남을 수 있다. 게다가 적대인 우에스기 가게카츠나 모리 데루모토나 이 놈들 걸 빼앗아다 동군 영주들에게 나눠주면 그만이므로 이에야스 본인은 일절 자기 고쿠다카에 대한 피해가 전혀 없다. 특히나 가토 기요마사의 경우, 그런 거 필요 없고 고니시 유키나가만 죽이면 된다고 했으니, 고니시 유키나가를 죽이고 그의 고쿠다카를 가토 기요마사에게 붙여주면 가토 기요마사에게는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게 된다. 참으로 절묘하게도 동군은 총지휘관과 다른 다이묘들 간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야스는 여기서 엄청나게 노련한 논공행상을 하는데 서군 다이묘들의 땅을 압수해다가 그걸로 논공행상을 벌인 것이다. 고니시 유키나가를 참수한 뒤 고니시의 영지를 그대로 가토 기요마사에게 주었다. [[모리 테루모토]]와 [[우에스기 가게카츠]]는 둘 다 [[고쿠다카]] 100만 석이 넘는 대다이묘였지만 이에야스는 그 둘의 영지를 25% 정도로 확 줄여버리고 전봉 조치했으며 특히 카게카츠는 광대한 아이즈 번에서 북쪽 구석탱이 요네자와 번으로 쫓겨나버렸다. 또한 쵸소카베 모리치카의 토사는 [[야마우치 카즈토요]]에게 주어졌다. 이로 인해 전투가 시작되자 동군은 적극적으로 전투에 뛰어들었지만[* 오죽하면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선봉인 자길 제쳐두고 이이 나오마사가 진군했다고 하자 노발대발했다. 이걸 소설 같은 데서는 이에야스에게 의심받았다고 분노한 걸로 묘사하지만 마사노리가 이에야스의 시종 가신도 아닌 이상에야 그렇게 보기보단 이에야스의 재촉이 매우 불쾌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이에야스가 끼어드는 것이 싫었을 테니. 물론 이에야스는 이런 식으로 마사노리를 자극해 개전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선봉으로서의 공훈은 낼름 가로채갔다.] 서군은 자기들끼리 눈치 게임 벌이고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